마이클 브린 대표
mike.breen@insightcomms.com
- 글로벌 PR 컨설팅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
- 前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한국인은 나라를 사랑하는가?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이 50년 만에 최대 규모인 36만명의 예비군을 소집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수천 명을 포함해 남녀 예비군이 생업을 중단하고 조국을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 한국인도 그렇게 할까? 이와 관련하여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군 당국은 많은 사람들이 당국의 메시지를 무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나 역시 의구심이 든다. 나에게 무슨 증거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이스라엘, 두 국가를 다른 비교 측면으로 생각해 보자. 그것은 바로 '출산율'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다. 이스라엘은 산업화된 민주주의 국가로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한국 여성이 평균 1명 미만의 자녀를 낳을 때 이스라엘 여성은 평균 3명을 낳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 이슬람교도, 드루즈인, 기독교인 및 종교적으로 소속이 안 된 여성(무교)들까지 모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출산율은 높다. 분명히 이스라엘인들은 그들 국가에서 자녀를 키우거나 국가를 위해 싸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도 국가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현재 한국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한국인들은 이 나라가 역사적으로 심하게 매를 맞은 국가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서술한다면 그들은 나약한 귀족들이 다스리던 초라하고 보잘것없던 나라가 20세기 안으로 상투를 잡혀 질질 끌려온 것처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이 놀랍게도, 또 역사를 조롱하듯이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는 21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국가를 건설했다. 그런데 왜 국가를 위해 왜 싸우지 않는 것인가? 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이유를 듣는다. 그 이유가 때론 우울감으로 다가오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구석도 있다.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것으로 권리, 보조금, 재정적 인센티브가 있는데 이들은 정부가 시민들을 위해 제공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논란 자체가 문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나라를 사랑하는 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존 F 케네디의 말을 빌리자면 '조국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첫 번째의 사랑을 보자. 우린 해외 여행을 할 때 자랑스러움을 느끼기 때문에 조국을 사랑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무엇이 내 삶을 편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믿을 자유가 있고, 불평하고 거부할 자유가 있으며, 같은 생각을 가진 불평하는 사람들과 방해받지 않고 모여서 술에 취할 자유가 있다. 나는 커피, 크루아상, 초콜릿, 김치찌개, 고급 와인은 물론이고 교육, 좋은 의료, 좋은 일자리, 저렴한 주택을 누릴 수 있다. 내가 칼럼을 기고하는 이 신문은 외국어판이 있는데 독자중에는 현실적으로 이와 같은 혜택이 전혀 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유형의 사랑이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라를 사랑한다. 나라는 나를 필요로 한다. 나라의 문제들은 나에게 목적을 제공한다. 또 나의 기여는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도 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을 위해 나를 희생할 가치는 충분하다. 이러한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 당신의 자녀, 가족, 친구, 그리고 당신이 알지 못하는 5000만명을 위해 더 큰 이익을 위해 희생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싸우려는 의지와 자녀를 갖겠다는 의지를 측정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희생을 수반한다. 군인들은 목숨을 건다. 부모는 영구적으로 자신의 삶을 두 번째 순위에 둔다. 물론 이러한 의지들을 완전히 볼 수 없다고 밀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헬조선이라고 하지만 이 나라는 북한이 아니다. 우리는 노예도 포로도 아니다. 그러나 군대에 대한 경멸, 노키즈존 레스토랑에 대한 온라인 박수 등 이기심을 조장하고 이타심을 인기 없게 만드는 논쟁은 만연하다. 그러나 나는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겐 좋은 경험이 없어 나타난 결과이다. 최근까지 이곳의 삶은 힘들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큰 문제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세상사가 끔찍하고 힘들다는 것을 자꾸 상기시킨다. 때때로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있는 이곳은 여전히 나의 조국이며 나는 여전히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고. (번역=황민하 인턴기자)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과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2024-04-30 10:06:02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대한민국 국회 "분발하세요"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인간사에서 단체로 임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나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팀이 지고 있을 때 11명의 재능 있는 선수들과 숙련된 감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법처럼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큰, 110%의 경기를 보여줄 때가 있다. 이는 학교에서, 예술에서, 회사에서, 군대에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필자는 이 현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게 정치에도 적용되는 현상인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회라는 집단이 개별 국회의원의 합보다 더 나은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회의원들은 변호사, 기업가, 경제 전문가, 사회 활동가 등 개개인으로는 훌륭한 전문가지만 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 것도 아니고, 모이기만 하면 어리석다. 정치인들이 무능하다는 말도 아니고 국민들이 잘못된 사람에게 투표했다는 말도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꼭 집어 말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제도로서의 의회가 이 나라 국민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높은 수준의 리더십을 제공하는 곳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결코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지 않다. 이제 독자들은 필자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우리는 신중하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원칙 아래에 살기로 동의했다. 이론에 따르면 이 공식은 시민 개인과 가족이 단지 생존(survive)하는 게 아니라 삶을 영위(thrive)할 수 있게 해준다. 공동체임에 사회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이렇게 만들어진 법들이 작동한다. 분쟁이나 사회문제가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결국 법이 귀결시킨다. 분쟁에서 문제가 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들어 기존에 있는 법을 보충한다. 이는 복잡한 절차이지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5000만명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하고 정교한 대한민국이라는 '마을'이 잘 굴러가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국회는 이 마을에 중대한 기관이며 두 가지 목적을 수행하고 있다. 일단 토론의 장을 형성한다. 그 말인즉슨 규제와 우선순위가 필요한 사회문제들을 찾아낼 책임이 있다. 둘째로, 국회는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법과 기존의 법을 개정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 4년마다 18세 이상 국민들은 이러한 중요한 일을 맡을 300명의 책임감 있는 사람들을 뽑는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사실 유권자들은 253명을 뽑고 47명의 추가 의석은 인기투표 비율에 따라 정당에서 공천한다). 현직 국회의원들의 고용 계약은 4월 10일에 만료된다. 그때 참여를 원하는 성인인 시민들은 일종의 집단 고용 위원회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 투표를 한다. 기존의 국회의원을 다시 고용할 수도 있고, 그들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선거는 우리 민주주의에 중대한 ‘민주적인’ 부분을 맡고 있다. 그것은 국가와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강요받지 않은 지지를 촉진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의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그 과정에 관여하고 우리가 선택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에 간접적으로 동의하는 메커니즘이다. 이것은 신성한 것이며, 예를 들어 부정선거를 해 이런 권리를 침해했을 때는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건 동시에 약점의 원천이다. 자신을 돋보이기에 능한 정치인들이 보상받고 그들로 하여금 정당이나 심지어는 국가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의 관심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일련의 미인대회처럼 보이는 대회에서 승리해야 한다. 첫째로, 그들은 정당에 등록되어야 하고, 다음에는 본인 지역구에서 승리해야 하고, 4년 뒤에 재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늘 대중의 시야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내에서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훌륭하게 보이도록 만들며 더 중요하게는 ‘기사 거리가 될 만한’, 언론에 보도될 수 있는 법안을 도입해야 한다. 이 말인즉슨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인 비전과 에너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일들이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답을 모르겠다. 필자에게 몇 가지 제안은 있지만 아무도 실행에 옮길 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제안은 정당들이 사소한 문제로 싸우는 걸 멈추고 중요한 문제에 협력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느끼기에는, 정확하진 않지만, 국회의 정치인들은 상대와 토론하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평판을 더럽히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따라서 영부인이 핸드백을 받았어야 했는지에 대한 관심은 필자에게 솔직히 황당하며, 그저 대통령을 약한 남편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비열한 방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제안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책임질 사안과 아닌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극도로 낮은 출산율과 극도로 높은 자살률을 가지고 있다. 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삶의 목적과 행복 추구에 관한 문화적 변화의 깊은 흐름에 있다. 따라서 이건 국회가 해결할 책임이 있거나 능력이 있는 게 아니다. 물론 경제적 인센티브와 지원의 형태로는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겠다. 세 번째로 정치인들은 탄핵에 대해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탄핵과 30년형 선고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역사적인 실패였다. 사건의 교훈은 거리에 나선 군중들의 이야기는 경청해야 하지만 그게 나라를 운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국가가 흔들릴 만한’ 실패를 저지르지 않은 이상 탄핵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탄핵이 선거 결과를 뒤집는 전략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 선거는 신성하다.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코를 골 때마다 이혼을 외치면 안 되는 것처럼 그 단어 자체를 쉽게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제안은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과 같은 동의 요청을 받았을 때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처럼 한덕수 총리가 전 직장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받았다는 논란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국회의원들은 얼마나 벌까?) 혹여 누군가의 아들이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있거나, 학생으로서 무언가를 표절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힘든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성직(聖職)에 대한 잣대로 평가받을 일이 아니다. 필자는 최근 국회의 연례적인 국정감사를 유심히 지켜보지 않지만 가끔 위원회에 국회의원들 앞에 출석해야 하는 사람을 만난다. 이들은 국회의원들이 진실을 밝혀내고 개선책을 모색하는 것보다 자신들을 협박하고 괴롭힌다고 느끼고 있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알지 못하지만 인식이 이러하다는 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협치와 관련해 입법에 관해서 여야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기엔 의원들이 허구한 날 사소한 문제로 다투고 있는 반면 실제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고 입안하는 수고를 하는 것은 국가의 관료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기자> 2024-03-30 10: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영화 '건국 전쟁'과 한국인들의 정체성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절찬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은 대다수 국민들이 교육을 받고 믿고 있는 바와 다르게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부패한 독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는 그에 대한 일반적 추정과는 달리 이 대통령이 1950년 북한이 남침했을 때 서울에서 도망가지도 않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수백만 달러를 챙겨 미국으로 탈출하지도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증거를 내놓았다. 그러나 영문 제목(The Birth of Korea, 국가의 탄생)이 방증하듯, 초대 대통령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데 있어 영화는 그의 삶을 재해석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관객들이 국가의 탄생에 대해 더 잘 이해함으로써 내부를 결속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을 돕는다. 이 영화는 개봉이 매우 시기적절했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렬했다. 특히 중장년층에게 영향이 컸다. 이승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가장 먼저 보러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이승만이 나쁜 사람이라고 믿고 자란 성인 자녀들을 불러놓고는 그 영화를 보고 오라고 권했다. 이렇게 김덕영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개봉된 시점부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줄줄이 영화관을 찾았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라고 호평했고, 오세훈 서울시장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영화를 비판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영화가 더 화두에 오르기도 했다. 한 대변인은 “독재와 부패, 부정선거로 4·19혁명에 의해 쫓겨난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에 현직 대통령이 동참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했다. 전 대통령에 대해 다룬 또 하나의 영화 “길 위의 김대중” 때와 같이 정치인들이 관람행렬을 이루는 현상은 총선 시즌이 다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후보들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그들이 노리는 자리와 역할의 중요성을 느낀다. 어쩌면 극장을 찾는 건 과거 지도자들의 묘소를 방문하여 그들을 기리는 (그리고 사적으로 다른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전의 관행에 대한 현대적인 대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시의적절한 이 영화가 흥행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건 바로 시사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평양에 있는 김정은이 말 그대로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남북 통일에 대해 매우 확실한 “No”를 외쳤다는 것이다. 그는 “남한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자매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들은 별개의 민족이며 우리의 “주적”이라고도 덧붙였다. 북한은 남한 지도자들이 수십년 동안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통일의 문을 닫아버렸다. 반면 우리 남측의 국민들 사이에서는 통일에 대한 전략뿐 아니라 통일국가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분열된 모습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치는 우파와 좌파로 갈라져 있다. 우파 정치인들은 한때 가난하고 권위주의적이었지만 지금은 부유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충성한다. 좌파 정치인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다른 한국에 충성한다. 상상 속이고, 그러므로 더 순수한 한국에 대한 그들의 충성은 좌파 정치인들을 대한민국에 일시적으로 충성하게 만든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다소 정당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관점으로 초대 대통령의 행적을 지적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승만은 이기적이고 부패한 독재자였으며, 그의 정권은 비합법적이었다. 이건 우리가 믿고 자라온 이승만에 대한 시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승만에 대한 북한의 시각도 같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김덕영 감독은 워싱턴에 있는 특이한 사실을 비춘다. 인도 대사관 밖에는 현대 국가의 정신적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 밖에는 넬슨 만델라의 동상이 있다. 대한민국 대사관 밖에도 동상이 하나 있다. 그러나 그건 대부분의 한국인은 들어본 적도 없을 서재필의 동상이다. 왜 그럴까? 왜 이승만이 아닐까? 국가가 이승만을 부끄러워 하기 때문이다. 맞든 틀리든, 이런 태도의 요체는 대한민국의 역대 행정부가 심지어 민주주의 시대에도 전임자에 대한 경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일종의 자기 혐오의 증거이다. 어쩌면 이제는 국민들이 통일 한국에 대한 환상을 잠시 내려놓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중 하나이자 의젓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좋든 싫든 간에 국가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그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면 놀라울 것이다. 그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범죄자가 아니다. 영화에서 인터뷰한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승만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 기자> 2024-02-29 06: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김정은의 반(反)통일 선언 …북한의 새로운 '통일 전략'인가?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지난해를 마무리하며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더 이상 남한과의 화해나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그는 "우리를 ‘주적’이라고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하여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현실을 인정하고 남조선 것들과의 관계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번 선언을 두고 북한이 기존의 오랜 국가 전략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남측의 본능적인 가정이다. 남한의 헌법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것처럼 북한 노동당은 항상 통일을 궁극적인 국가 목표로 설정해왔다. 우리로서는 어느 한쪽이라도 실제로 별개의 국가 차원의 새로운 노선을 추구하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 지도부가 한반도 통일을 포기하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국가적 테마로 봤을 때, 통일이 매우 유용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는 실제이든 가상이든 늘 적으로부터 방어자임을 자처한다. 북한의 독재자들은 ‘악의 존재 남한과 동맹국 미국을 상대로 통일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아주 좋은 명분으로 자유를 억압하고 특수부대처럼 나라를 운영해왔다. 확실히 그것은 변하지 않을 건가? 김정은이 국가 목표의 변경을 공식화 하지 않는다면, 통일하지 않겠다는 그의 선언은 전술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에서 가장 힘을 얻고 있는 분석은 김정은이 더 이상 윤석열 정부와 거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에 대한 단서는 그가 “정권 붕괴” 와 “흡수 통일”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 있다. 김정은은 그런 것들이 집권 여당 국민의힘의 진짜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맞다. 남한의 우파는 김씨 가문이 집권하는 한 통일의 희망은 없다고 본다. 그의 정권이 무너지고 북한 주민들은 그의 폭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남한의 우파도 통일이 진정한 체제 통합을 이룰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진 않다. 그들에게 통일은 북한이 자유시장 민주주의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통일은 흡수의 방법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진 않다. 이러한 흡수는 북한 주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하게 되더라도 점진적이고 통제적이며 평화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거다. 야당인 민주당은 여당과는 다른 대북 접근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단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좌파는 보수당보다 덜 정직하다. 그들은 북한 사람들이 ‘남쪽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존중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환상이 깨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통일이 되려면 남한 정부가 정치적으로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북한의 체제는 유지되지 못할 거다. 남한에 의해 강제로 제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유를 찾은 북한 사람들이 거부할 것이다. 김정은도 이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가 여당과 야당을 모두 싫어하는 거다. 독자들은 그가 몇 년 전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명백한 화해의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얼마 안 돼 그 후 남북 간 대화를 위해 사용되었던 개성의 연락사무소를 말 그대로 ‘날려버린’ 것을 기억할 거다. 이를 고려했을 때, 김정은의 반통일 선언은 그저 현실을 수용하고 적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화해와 통일에 대한 대화에 지쳤고, 좌절했다. 진전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며 솔직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우 진지하게 염두에 두어야 할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만약 북한이 화해와 통일을 거부한다면, 남한이 계속 통일에 전념하는 걸 평양 측에선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양쪽 모두 통일에 찬성하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반감을 상쇄시켰다. 그러나 한쪽만 원하게 된다면, 남북 통일 문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한은 상대국의 영토와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인 주장을 펼치는 러시아처럼 비쳐질 거다. 이 말인 즉슨, 남한이 전 한반도에 적법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북한의 주장에 맞서는 '내부의 적'에서 ‘외부의 적’으로 변해 주권 국가로서의 북한의 존재를 위협하는 모습이 된다. 이제 북한 정권은 훗날 전쟁에서 남한을 더 이상 불법 국가가 아닌 별개의 적국이라 취급하며 남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많은 분석가들이 전쟁을 조장하고 핵무기로 도발하는 것이 북한이 한반도를 통일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고 있는데, 정작 현재 북한 정권은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 기자) 2024-01-17 06: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개 식용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필자는 종종 미래의 후손들이 우리 세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과거에 다정하고 교양있는 분들이 어떻게 노예를 자기 물건처럼 소유할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후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현재의 도덕적 올바름(moral uprightness)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모두 인정할 만한 몇 가지 후보들이 있다. 전쟁, 가난, 오염, 외로움, 혹은 높은 세금. 그러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축산(식용으로 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후대 사람들은 이 문제를 후진성(backwardness)이라는 개념으로 뒤돌아볼 것으로 필자는 상상해본다. 그들은 옛날 사람들이 소의 젖을 짜고 양떼를 몬 것은 이해할지 몰라도, 어떻게 전용기를 타고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들이 동물을 도축하여 만든 햄버거를 먹었는지에는 역겨움을 표할 것이다.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없어보일지 몰라도, 이런 식의 변화는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다. 즉, 시험관에서 자란 배양육(lab-grown meat)이 상업적으로 널리 퍼지면 채식주의 시위자들이 행동에 나서고 아마도 한두 세대 내로 가축 사육장, 도살장과 정육점은 과거의 추억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최근 여당인 국민의힘이 개고기 거래 근절을 위한 법제화를 논의하면서다. 추진 중인 법안은 개 식용에 가담한 자는 최대 5년 징역 또는 5천만원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식용견 농장주들에게 조금 더 우호한 내용이긴 하지만(3년 징역 또는 3천만원의 벌금) 관련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개 사육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항의의 의미로 서울 도심에 200만 마리의 개를 풀 것이라며 협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한국 사람들은 개를 고기가 아니라 반려동물로 본다. 갤럽 코리아의 작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가 개 식용에 반대했다. 오직 8%가 개고기를 먹어본 적 있다고 답변하였고, 2015년 27%와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결과다. 시위 위협 자체가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저 그들을 21세기 버전 러다이트(Luddites)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 독자들도 있을 거다. 200년 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 본인들이 일자리를 뺏길까 방직 자동화 기계들을 부수던 수공업 노동자들 말이다. 식용 개 농장주들이 서울 전역에 개를 풀어 시민들은 집 안에서 공포에 떨고, 소방관들은 개들을 잡기 위해 그물을 가지고 뛰어다니는 상상 속의 모습은 이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필자에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면, 개 식용 농부들은 허세를 부린다고 말할 수있다. 그들도 언젠가 식용 개 산업이 끝날 거라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개고기 거래 금지 법안이 도입되면 2027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다른 나라는 입법이나 신기술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은 산업군의 사람들이 스스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부는 식용 개 사업을 정리하는 농부들이 다른 생업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시위가 정부로부터 확실한 지원 약속을 받아둘 뿐만 아니라 지원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개고기 거래가 사라지면 개고기 식용 반대를 외쳤던 사람들의 승리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물권을 외치는 사람들은 훗날까지 생각할 만큼 사려 깊고 신중하다. 그들은 농부들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구조된 개들은 미국으로 입양 보내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국내 활동가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들은 모든 육식을 반대하는 더 넓은 운동의 일부이다. 그들은 소, 양, 돼지, 닭과 토끼의 해방에 헌신하고 있다. 이건 분명히 좋은 움직임이다. 혹자는 터무니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학은 이미 배양육을 연구하며 그들의 편에 서있다. 배양육이 널리 상용화 되기 시작한다면, 더 급진적인 활동가들이 나타날 것이다. 언젠가 그들은 도축장의 끔찍한 현실을 공개할 것이다. 도축장으로의 체험학습은 중학생들을 채식주의자로 만들 것이다. 현대 사회는 타인에 대한, 애완동물에 대한, 환경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미덕 삼고 행동하지만 여전히 가축들의 곤경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햄버거와 가공육이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 동물들이 일상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배양육으로의 전환이 급속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후손들은 그들의 조상인 우릴 보고 이런 질문을 던질 것이다. “‘진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있었다고요?” 후손들에게 육식이란 너무 잔인하고 불쾌해서 우리 시대의 사상이나 업적이 단순히 그 사람이 육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시될 수 있을까? 그들은 ‘육식주의자의 의견 따위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일까? 너무 과장해서 말하고 싶진 않다. 줄리어스 시저나 조지 워싱턴 같은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시대에 기여한 바를 역사가 인정하는 것처럼, 조 바이든이나 윤석열 같은 지도자들도 샌드위치에 소고기를 넣어 먹었지만 역사적으로 적절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육식을 했다는 이유로 높이 평가하는 걸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오, 너 <햄릿> 읽고 있니? 근데 그거 알아? 셰익스피어가 육식을 했다는 거?”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 기자) 2023-12-06 05: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북한이 하마스처럼 서울을 공격한다면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가한 기습 공격은 한국의 안보에 심중한 질문을 던졌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김정은이 이번 하마스의 행보를 보고 비슷한 공세를 펼칠까?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그에 맞설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한반도의 좋은 비교 대상이다. 이스라엘과 남북한은 같은 해에 정부가 수립됐다.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무력 충돌이다. 이번 전쟁의 발발은 한반도의 오랜 분단 상태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또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남북한 갈등과 마찬가지로 한쪽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미국이 지지하는 동맹이라는 것이다. 그 말인 즉슨, 상대가 각종 국제법과 행동 규범을 무시해도 국제적인 동정심을 얻기도 하는 반면 그들은 이들을 준수해야 그러한 지지를 유지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 하마스는 겨우 서울의 반 정도 되는 크기에 200만명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를 점령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강원도 크기의 영토에 900만명이 살고 있고, 한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작은 나라지만 국토 면적이나 경제력 면에서나 하마스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하마스는 비정규적 군사 전략으로 맞선다. 우리들에게 하마스의 군인들은 북한군처럼 광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주에는 테러 전술로서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펼쳤다. 그들은 뮤직 페스티벌에서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신은 위대하다(God is great)“를 외치며 마을에 침입해 집에 있던 여성과 아이들을 죽이고 약 100명을 인질로 가자 지구로 데려갔다. 군사적으로 열세인 하마스가 이러한 전술을 통해 강력한 적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것으로 분명해 보인다. 결국에는 하마스가 말살되는 결말로 끝날지도 모른다. 우리가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이러한 자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습 공격의 목적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본인들의 군사력에 대해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일각에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외교 관계의 역사적인 행보를 저지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있다. 언뜻 보면 북한이 하마스와 같은 운명을 무릅쓸 것이라는 생각을 일축하는 것이 일리가 있다. 북한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남한보다 군사력이 열세인 북한은 패배할 것을 알기 때문에, 도발을 할 때도 남측의 보복을 가져올 선을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모두가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한 분석가는 필자에게 ”때로는 자멸 그 자체가 합리적인 선택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물론 국방 차원에서는 어떤 시나리오도 섣불리 일축해선 안 된다. 여기서 진짜 고민해봐야 할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 북한이 자살 행위나 다름 없는 시도를 감행할 것인가다. 남북 간 힘의 균형을 바꾸기 위한 시도가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남측 군사 전략가들은 북한이 서울에 포격을 가한 뒤, 빠른 침공으로 수도를 점령한 뒤 정전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서울 인구 천만과 그들의 노하우(know-how)가 북한의 지배하에 있는 가운데 남북간의 대결은 지속되는 상황이다. 누구도 북한이 빠른 시일 내에 공격을 개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은 준비가 되어 있다. 정신적으로 준비 태세가 되어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지난주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북한 도발 시 적의 화력 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의 화력이 충분하고 아니고는 별도의 문제이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S)를 따라 운영하는 대포 1000문에 대한 방어가 미흡한 실정이다. 북한은 도발 시 남측의 전략 시설이나 군사적 목표물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있겠지만, 그들이 북한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하마스가 그랬던 것처럼 가정집을 습격하여 남녀 그리고 아이까지 공격하면 어떡할 것인가? 과연 ‘어떤 상황’이 그런 일을 초래할까? 이는 상대방의 반발(reaction)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일 것이다. 북한은 75년의 전쟁을 그들의 방식으로 끝내기 위해 준비를 하겠지만 자신들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난받고 싶지는 않는 것이다. 정말 전쟁을 벌인다면 그때는 핵무기를 동반할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현 상황을 보고 있자니 역시 인간의 갈등이란 좀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썩 유쾌하지도 않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번역: 문가현 인턴 기자) 2023-10-17 10:30:35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미래 통일한국에서 '北 역할론'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언론인 2명과 외교관 2명이 참석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필자는 한국이 언제 통일될지 내기를 했다. 그때가 1990년이다. 그 이전 한국에 통일은 판타지였다. 통일을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통일에 대한 준비는 차치하더라도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에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공산주의가 도미노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통일이 갑자기 올 것처럼 보였다. 한 외교관은 "내년 4월 15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날짜를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로 제시한 것은 조크였지만 내년이라고 한 것은 진지했다. "1994년 4월 15일." 한 언론인이 4월 15일에 대한 조크를 이어받으면서 1994년을 제시했다. 그는 이날 모임에서 유일한 한국인 참석자였다. 우리 외국인들은 그가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다. 4년이나 더 있어야 한다고?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닌가 봐. 그 자리에서 필자는 "1992년 4월 15일"이라고 말했지만 나 자신도 너무 보수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날짜에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고 지나갔다. 우린 아직도 언제 통일이 될까 추측만 하고 있다. 통일의 타이밍과 더불어 우리가 아직도 던지는 질문이 있다. 통일된 이후 북한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북한은 통일된 국가에 어떤 식으로 공헌을 하나. 분명히 북한은 땅과 사람을 제공할 것이다. 한국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국토는 두 배나 되고 인구도 5000만명 정도에서 7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유럽 스탠더드로는 독일 처럼 큰 나라가 된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정치 제도, 정부 서비스, 경제력, 기술적 노하우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통일된 국가에 사는 한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북한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니면 민감한 이슈지만 일부는 개성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해 필자는 통일된 국가가 현재의 한국보다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될 만한 두 가지 요소를 북한이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매우 심오한 것인데 독자들은 이에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그 아이디어 자체가 국가안보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사실 필자는 한국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요소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국가의 지배적 세계관에 관한 것이다. 이는 협상이나 정리작업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통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출산율은 세계에서 최저로 지난주 통계청은 올해 2분기에는 더욱 하락해 0.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은 분명 정부의 정책이나 복지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삶의 목적과 관련된 것이다. 왜 내가 존재하나? 나에게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개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생을 영위할 의지에 관한 이러한 자연스러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집단적으로 나온다. 우린 부모들이나 사회의 패턴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매우 광범위하게 이야기해 본다면 현대 한국인들의 증조부모들에게 삶의 목표는 혈통을 잇는 것이었다. 또 조부모에겐 살아남는 것이, 그리고 부모들에겐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우리에겐 확신이 없다. 불교나 기독교가 신도들에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그들도 사회의 트렌드에 종속되곤 한다. 예를 들자면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한다기보다는 좋은 대학에 가거나 부자가 되는 것을 도와 달라고 기도하며 이는 흔한 일이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합류한 새로운 국가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현대 역사상 최악의 정권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기쁨 그리고 사랑이 가득찬 국가로 변모할까?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나은 세계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북한 사람들. 우리는 북한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유를 누리게끔 도움을 주게 되면서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요소는 마치 군주제와 같은 북한의 통치제도다. 당신들이 전화로 113을 누르기 전에 김정은은 단연코 베제하겠다. 필자는 김일성 가문의 통치하고 이에 남한인과 자유를 얻은 북한 주민들이 동의하는 시나리오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메원야 하는 갭은 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적으로 선출된 한국 대통령들은 은퇴 이후 대부분 불행했고 국민들을 좌절감에 빠뜨렸다. 이러한 좌절감의 원천은 실제로는 부정부패 때문이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을 군주로 생각하는 데 기인한다. 제도적으로 대통령은 군주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는데 국민들은 지도자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제도는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정치적 논쟁이나 싸움이 이어지게 만들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총리와 대통령이 권력을 분담하는 의원내각제 도입은 어떨까? 아니면 군주가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제도는? 군주제 아이디어는 마땅한 후보도 없고 또 권력세습 제도에 대한 절대적 반감 때문에 우린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떻게든 미래 통일된 국가를 염두에 두고 한국인들은 국내 정치의 안정과 새로운 세대의 의미 있는 삶을 고민을 할 필요는 있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2023-09-12 06: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정전협정 70주년…머나면 평화협정 마이클 브린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즈 회장] 다음 주는 한국 전쟁의 포성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 70주년이다. 전쟁이 멈춘 그때로 돌아가 당신이 여기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고민하던 당신은 점쟁이 여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녀는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고 단지 휴전을 한 것에 불과해 "제대로 된 평화가 찾아올 때까지는 서울에 부동산을 사면 안 된다"고 충고할 수도 있다. 거리에 길게 늘어선 텐트들 사이로 다른 점쟁이 여인을 찾아 갔다. 그녀는 더욱 회의적이다 "공산당들이 포기를 한 것은 아직 아니다. 미국인과 결혼해 이민을 가라." 아마 이들 점쟁이 중 일부는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일 수 도 있다. "미국인들이 북한 재건에 나설 것이다. 시멘트에 투자해라." "김일성이 연말까지는 처형을 당하고 통일이 올 것이다." 이런저런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점쟁이가 있을까?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안에 남한의 경제적 성장이 시작될 것이다. 자유시장 경제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고 우리 손주들은 부유해지고 전 세계 모든 외국인들은 그들을 감탄하며 바라볼 것이다." 이렇게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을 상상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한반도 상황은 너무도 불안했지만 그들은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 해내고 말았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끊어진 대동강 철교 위를 기어 오르는 피난민들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전쟁으로 파괴되어 폐허로 변한 나라를 일으키려는 한국인들의 의지를 상징했다. 지금은 물론 상황이 달라졌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구조적인 불안감은 남아 있다. 1953년 7월 27일 서명된 것은 휴전협정이다. 평화협정이 아니다. 북한은 21세기 들어서도 스탈린식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 전체를 손에 넣으려고 전념하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때,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다루어 보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 아닐까? 이 문제를 얼마 동안이라도 고심해 본 분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은 논의가 지속되면 될수록 우리 측 내부에 듣기 싫은 시끄러운 소리가 더욱 커진다는 사실을. 북한이 우리를 비난하고 우리는 북한을 무조건 비난하던 때가 있었다. 공산주의 vs 반공.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린 우리 측도 비난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산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는 반드시 우리 측에서 나와야만 하는 것처럼 됐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들이 나쁜 사람들이라 평화가 없다고. 글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바라지 않기 때문에 평화협정이 없는 것이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평화협정을 원했고 우리는 그들에게 '노'라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한국과 미국을 의미한다)가 전쟁광이라서 그런가? 아니다. 우린 우리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북한이 선의의 신뢰를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는다. 젊은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 하면 보편적 헬스케어 제도 또는 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다. 전쟁 세대들은 그들을 전쟁을 벌이기 위해 평화를 기만하는 교활한 사람들로 기억한다. 이러한 불신을 두고 부당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논쟁을 할 대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불신한다면 그런 불신을 받고 있는 당사자가 신뢰를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 즉, 불신을 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누그러뜨릴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북한은 남북 관계의 파괴자였다. 남측 해군 함정을 어뢰로 공격하고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주민들은 통치자의 거짓말에 대응도 못하는 가운데 북한 정권은 불신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둘째, 평화 자체가 남한과 북한의 긍극적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화가 목표라면 남북한 간 상호 신뢰가 없어도 평화협정을 맺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남북한이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경찰과 범인이 한 팀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쪽이 완전히 바뀌든, 아니면 다른 쪽에 정복되지 않는다면 통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일부는 평화협정이 통일을 향한 하나의 단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셋째, 평화협정을 주한미군 철수와 연결하는 것이다. 과거 남측에 주둔했던 미군의 철수는 첫 번째 전쟁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또 다른 전쟁을 촉발할 주한미군 철군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한국 국민들도 남측 군대가 단독으로 북한에 맞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한다. 사실 필자로서는 북한이 남측 상대가 될지 의문이다.(북한은 전쟁을 치를 자금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전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는 있다.) 만약 우리 측이 평화협정 체결을 고려하도록 하려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우리에게 먼저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상황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현재 상황은 역사로 남게 되고 언젠가는 우리가 그 방향과 결과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안갯속처럼 불확실한 현재 상황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두고 시간과 자금을 낭비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아마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때일지도 모르겠다. 점쟁이에게 물어볼까?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2023-07-20 06: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요술램프'에서 무엇이 튀어나올 것인가 챗GPT의 창시자이자 오픈AI의 대표 샘 올트먼과 공동 창업자 그레그 브로크먼이 이번 달 서울에서 열린 "OpenAI Fireside Chat” 행사에서 청중으로부터 받은 첫 질문은 AI가 종교 기관의 역할을 대행하고 일종의 교회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인가였다. 테블릿 위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목격한 사회자는 질문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킬킬 웃었다. 마치 질문이 당혹스럽게도 주제와 무관한 것처럼. 그러나 브로크먼은 좋은 질문이라며 AI에 의해서 인생의 모든 부분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근본적으로, AI는 인간의 활동과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이미 성경 구절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어드바이스(advice)를 제공하는 "AI 목사"를 창조했다는 점을 그는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위대한 황금 시대로 진입하려고 한다"고 말한 올트먼 대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AI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있다. 이번 행사에서 아무도 던지지 않은 질문이지만 그것은 비의도적인 결과(unintended consequences)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지난달 '인공지능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이 AI의 위험성을 공개적으로 알리며 구글을 떠나면서 증폭되었다. 이러한 두려움 가운데에는 AI에 의해 사라지는 재앙적 수준의 일자리, 사건 사고, 범죄자들이 설치한 파괴적 AI 그리고 반민주적인 정부 등이 포함되어 있다. AI에 대해 경고음을 보낸 또 다른 인물은 구글의 신사업개발 총책임자 모 가댓이다. 그는 아직 아이를 가지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낳기 전에 AI 이슈가 전 세계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충고한다. AI를 개발하는 전문가들조차도 문제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이다. 전문가들은 AI가 곧 인간보다 지능에서 앞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군중 속에서 얼굴을 식별하는 것과 같은 특정의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뿐 아니라 일반적인 모든 면에서도 우리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다. AI가 자신만의 코드를 적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단기간 내에 인간보다 수천 배가 큰 IQ를 지닌 AI로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또 AI가 의식이 살아서, 생각하고 감정을 가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이 너무 과대 포장된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지만 힌튼이나 가댓과 같은 AI 대가들까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한 것을 보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주목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AI 개발을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는 지금 당장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또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린 '요술병'에서 튀어 나온 자니를 되돌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는 생각보다 쉽고 단순하게 대답을 할 수 없는 깊이 있는 질문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AI란 무엇인가? 어느날 우리 집에 AI 로봇을 가지게 된다면 나의 무엇과 비교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우리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 하냐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불교 신자로 인간은 고통을 받는 존재로 마음의 수련과 종교적 수행, 육체 노동과 올바른 행동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로봇은 고통을 받고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과는 다르다. 당신은 AI를 하나의 도구로 여기고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AI는 엄청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당신에게 어드바이스를 해주기 때문에 마치 슈퍼 지능을 가진 하인처럼 당신의 종교적 수행에 효과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래도 당신은 AI와는 다르다. AI 로봇은 예수에 의해 구원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레그 브로크먼이 말한 것처럼 당신은 AI를 성경 전문가나 카운슬러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면 어떨까? 세속적인 물질주의자들에게는 인간이란 동물을 형성하는 원자들로 결합되어, 자기 앞의 아무것도 신경을 안 쓰며 우주의 공간을 질주하는 미지의 행성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이들 세계관의 핵심은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기 때문에 그들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AI가 이런 관점을 가진 인간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AI가 인간보다 훨씬 지능적이라서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스투피드"(homo stupid)로 변할까? 그렇다면 물질주의자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AI는 우리가 개미를 무시하듯이 우리를 무시할까? 아니면 AI가 위협을 느끼고 우리를 파괴할까? 우리는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IQ와 다른 무엇인가에 의해 우리들이 구분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AI에 대한 존재적 두려움은 떨치기가 힘들다. 왜나하면 세속적인 물질주의란 사실 민주주의 사회 엘리트 주의에 대한 신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주의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믿음을 바꾸게 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AI는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것이 지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나타내 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고 인생의 신비로운 선물로 축복을 받아왔다. 이렇게 나아가면 AI는 종교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AI가 우릴 좀 더 종교적으로 만들 것이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2023-06-22 06:00:00
- [마이클 브린의 For Another Perspective] 'Korea'가 아닌 'Hankook'으로 부르면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자유시장 경제의 민주주의 국가로 마음이 맞는 국가들과 동맹을 추구할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제적인 한국에 대한 인식에서 북한을 떼어 내야 할 때다. 우리는 북한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실 그들은 우리를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다. 외국인들은 섬뜩한 '지옥에서의 휴일'이 아닌 영감을 주는 여행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한다. 많은 외국인들은 이곳에서 일을 하거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이 우리를 북한과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 추악한 현실이다. 국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Korea'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한 나라가 아니고 두 나라라는 사실이다. 또 K-팝이나 손흥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혼동을 하고 있다. 어느 쪽이 놀라운 존재이고 어느 쪽이 끔찍한 존재인지를 혼동하는 수준을 넘어 북한과 연관된 가치나 행동조차 왜 그런지 'Korean'으로 인식이 된다. 나는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해외를 여행하는 북한인들은 자신들이 남한인으로 오인하는 것을 가끔 반가워한다. 우리의 평판은 훨씬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럽고 우리들에게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한과 북한은 다른 국가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친구가 없다. 이웃의 참혹한 독재 정권과 쓸모없는 정부가 왜 우리 민주 국가의 명성을 더럽히고 있는가? 그 이유는 Korea라는 단어에 있다. 오직 가까운 이웃 나라들만 'Hankook'이나 조선 등 비슷한 호칭을 사용한다. 'Korea'는 영어와 덴마크, 네덜란드, 페로스 제도, 핀란드, 독일, 그리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몰타의 언어와 타갈로그어로 사용된다. 이와 비슷하게 'Corea'는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과 웨일스의 언어로, 'Corée'는 프랑스어, 'Coreia'는 포르투갈어, 'Kaoli'는 태국어, 'Koreio'는 에스페란토어, 'Koreja'는 불가리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러시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에서 그리고 'Kuria'는 이누이트족이 사용한다. 모두 자신들의 언어에 'North'나 'South'를 붙여 남북한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왜 'Korea'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강요를 하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은 대부분 모든 분야에서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선 의견이 일치된다. 아마도 우리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외교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이런 무거운 짐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만 한다. 세계를 향해 우리나라에 적절한 이름으로 부르도록 요구하는 것이 어떨까? 'Korea'라는 호칭은 북한에 선의를 보인다는 차원에서 공짜로 넘겨주자. 그리고 국제적으로 우리를 'Hanklook'으로 새롭게 브랜드화해보자. 이러한 결정은 우리가 맘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 해안 주변의 바다와 달리 국제 간의 협정이 필요하지 않다. 나라의 호칭은 나라가 원하는 대로 불릴 수 있다. 예를 들어 1989년 버마는 미안마로 이름을 변경했고, 유엔은 즉시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만약 이렇게 하면 북한은 헌법상 남한이 자신들에게 속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유엔에서 남북한은 분리된 각자의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의 반대가 실질적으로 장애물은 아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를 '반통일적'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변경하는 것이 사실 통일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두 나라가 'Korea'라고 불리는 것을 고집한 것은 각기 통일에 대한 약속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두 나라의 입장은 세계를 향해 "우리를 믿어보라. 우리가 진정한 Korea이고 다른 쪽은 진정한 Korea가 아니다"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두 나라의 목표는 다른 편을 해체시키고 그들의 영토와 국민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각자에게 통일된 국가는 새로운 국가라기보다는 자신의 확장된 버전이 되길 바랐다. 알다시피 이러한 비전은 근본적으로 서로에게 공격적으로 보였다. 과거 정부의 평화 회담이 아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버리는 방법으로 통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도 우리는 접근 방식을 덜 공격적으로 바꾸어 나갈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한 국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우리의 비전에 동참한다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당신들은 별개의 국가로 지속해 나가고 우리는 당신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통일에 대한 자발적인 어프로치 신호를 보내기 위한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Korea'라는 단어에 대한 소유권을 버리고 영어나 다른 언어의 표현으로 'Hankook'으로 자랑스럽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문제는 복잡할 것이다. 예를 들어 K-팝은 H-팝이 되고 붉은 악마들은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린 어느 정도 민족주의적 만족감은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우리 방식대로 부르게 되면 외국인들은 우리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국내외에서 나라 이름이 달리 불리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공식 국명은 Ellada이다. 그린랜드는 국내에서 Kalaallit Nunaat로 불린다. 또 다른 예외는 'Deutschland'로 우리는 독일로, 다른 국가들은 Germany, Allemagne, Jarmal, Nemecko, Saksa, Tyskland, and Vokietija 등 여러 가지 다른 국호를 사용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은 국내외에서 불리는 국명이 발음상 차이가 나지만 동일하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필자 약력] 마이클 브린은 현재 글로벌 PR 컨설팅 회사인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스 CEO다. '가디언' '더 타임스' 한국 주재 특파원, 북한 기업에 자문을 제공하는 컨설턴트, 주한 외신기자클럽 대표를 역임했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포함해 한국 관련 저서 네 권을 집필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서울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하고 있다. 2023-05-18 06:00:00